“우리는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아키텍처가 최고의 AI 컴퓨터라고 판단해, 앞으로도 엔비디아 칩만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8월 5일 스페이스X 첫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던진 이 한마디는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었다. 엔비디아 주가는 다음 날 4% 상승하며 5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고, 젠슨 황에게는 사실상 ‘연간 수십만 장 GPU 독점 계약’을 확정지은 셈이 됐다.
AOL과 알파센스 트랜스크립트에 따르면, 머스크는 같은 자리에서 “내년 엔비디아 GPU 출하량의 매우 유의미한 비중을 스페이스X가 확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페이스X의 전신인 xAI 시절부터 엔비디아와 쌓아온 협력 관계를 “다층적 파트너십”이라고 표현하며, 자체 설계 칩(테슬라 Dojo·스페이스X 커스텀 실리콘)이 엔비디아를 능가하기 전까지는 엔비디아 고객으로 남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시장의 관심은 곧바로 ‘스페이스X가 어느 정도 물량을 소화할 것인가’로 옮겨갔다.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는 9일자 보고서에서 스페이스X의 2027년 컴퓨팅 용량이 10기가와트를 넘어서고, 연간반복매출(ARR)이 최대 3,000억 달러(약 390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현재 전 세계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 전체 매출을 뛰어넘는 규모다. 같은 보고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페이스X의 컴퓨팅 용량을 임차하기 위해 약 1,500억 달러(약 195조 원) 규모의 계약을 협상 중이라고 전했다.
스페이스X가 엔비디아 GPU를 이렇게 대규모로 확보할 수 있는 배경에는 2분기 실적발표에서 공개된 현금 보유고 1,000억 달러(약 130조 원)가 있다. IPO로 조달한 자금과 스타링크·팰컨9 발사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AI 인프라에 전방위로 쏟아붓는 형국이다. 한편으로 이 같은 ‘AI 올인’ 전략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스페이스X가 보유한 구형 GPU(일명 ‘미시매시’ 클러스터)의 임대 용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Wccftech를 통해 제기됐다. GPU 세대 교체 주기가 가속화되는 환경에서, 2027년까지의 투자 회수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엔비디아의 입장에서 스페이스X는 ‘꿈의 고객’입니다. 자체 칩 개발 역량을 보유한 빅테크들이 너도나도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는 와중에, 오히려 “엔비디아만 쓰겠다”고 공언한 초대형 고객의 등장은 젠슨 황의 협상력을 한층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1,500억 달러 계약 협상설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클라우드 임차가 아니라, MS가 애저의 AI 확장 전략 자체를 스페이스X 인프라 위에 구축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현재 시가총액 1조 7,500억 달러의 스페이스X가 AI 인프라 중개자로 자리 잡는다면, 2027년 10기가와트라는 숫자는 끝이 아니라 시작점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