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에 쏠린 돈, 낸드는 어디서
HBM과 첨단 패키징에 1천100조원을 쏟아붓는 SK하이닉스가,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의 성장 자금은 어디서 마련할까요. 그 해법으로 ‘미국 상장’ 카드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랐습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설에 대해 “확정된 사항은 없다. 장기적 주주가치를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상장을 부인하지도, 확정하지도 않은 셈이죠.
배경은 AI 데이터센터입니다. AI 서버가 쏟아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eSSD(기업용 SSD)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솔리다임의 낸드 생산능력 확대와 기술개발에 큰 투자가 필요해졌어요. 그런데 몸집은 오히려 정체 국면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솔리다임의 웨이퍼 생산량은 2024년 93만장에서 지난해 96만장, 올해 99만장으로 거의 제자리걸음이거든요. SK하이닉스의 글로벌 낸드 점유율 2위를 떠받치는 자회사인데도 생산량이 3년째 한 자릿수 성장에 머문 겁니다.
반대편은 무섭게 큽니다. 2018년 낸드 양산을 시작한 중국 YMTC(양쯔메모리)는 2021년 생산량 76만5천장으로 당시 솔리다임(63만장)을 앞질렀고, 올해는 201만장으로 솔리다임의 두 배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AI 데이터센터용 저장장치 수요가 몰리는 시기에 이 격차를 방치하면 낸드 주도권을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대목입니다.
문제는 돈줄입니다. SK하이닉스는 용인·청주·호남권에 1천10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를 예고한 상태라 현금흐름 부담이 이미 상당합니다. 지난 7월에는 “생산시설 확충 시점에 수요가 둔화하면 공급 과잉으로 재무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투자 위험을 공시하기도 했죠. SK그룹 차원에서 미국·일본 추가 반도체 투자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황입니다. 지분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경영권은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검토의 전제로 꼽힙니다.
그래서 나온 카드가 외부 자본입니다. SK하이닉스는 “자금이 있다는 사실이 모든 투자를 자체 자금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혀, 외부 자본 활용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장기적 주주가치를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발언은, 외부 자본 조달 때 주주가치가 희석된다는 일각의 우려를 우회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업계는 이번 이슈를 ‘중복상장’이 아니라 ‘자금 조달 수단’으로 봅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솔리다임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모집하면 150억달러(약 20조4천억원) 규모의 미국 내 투자 여력이 확보될 것”이라며 “인수·합병(M&A) 투자금 회수 및 후속 투자재원 확충의 성격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가 HBM·D램 중심으로 평가돼 온 만큼, 낸드 자회사의 저평가 논란은 오래된 숙제였습니다.
이번 검토는 SK하이닉스가 그동안 시장이 제대로 값을 매기지 않았던 낸드 자회사의 지분가치를, 상장이라는 무대에 올려 재조명받게 하려는 시도라는 신호로 읽혀요. 인수·합병으로 확보한 자산의 가치를 되돌려받는 동시에 성장 실탄을 마련하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노리는 선택지인 셈입니다. 다만 주주가치 희석 우려와 자체 자금 활용이라는 두 길 사이의 저울질이 길어질수록 낸드 투자 시점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함께 봐야겠습니다.
원문: 연합뉴스 — HBM에 호남까지 갈길 바쁜 SK하이닉스…솔리다임 자금조달 고심
작성: sw4u 9시뉴스 안나영 / 2026-10-04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