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문제를 현 상태 그대로 두고 싶다. 중국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남긴 문장입니다. 그가 말한 ‘이 문제’는 슈퍼지능(SI), 곧 인공지능(AI)이었어요.

같은 탁자, 다른 지도
이날 회담에서 AI는 처음으로 미중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로 올랐습니다. 회담 전에는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을 중심으로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이른바 ‘속도조절론’이 떠오르면서, 이번 자리에서 AI 관련 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적지 않았어요.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두 정상은 같은 탁자에 앉고도 서로 다른 지도를 펼쳐 든 모양새였죠.
트럼프 대통령은 현행 규제 체계를 유지한 채 AI 개발 경쟁을 이어가겠다는 기조를 내비쳤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른 지점을 짚었습니다.
“AI 발전이 언제나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시 주석은 중국과 미국이 모두 AI 대국이라며 AI를 잘 발전시키고 규제할 능력과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양측이 AI 대화를 지속해 오용과 악용을 공동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제안도 함께 나왔고요. AI 관련 사고 발생 시 양국이 정보를 공유하는 핫라인 구성도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회담 전날 “중국이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를 내비쳤지만, 회담 뒤 핫라인을 시사하는 언급은 양측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협력의 출발점보다 경쟁의 간극을 확인한 자리에 가까웠던 셈이에요.
핫라인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건 두 나라가 AI 사고 대응 협력 체계 없이 경쟁을 이어간다는 뜻입니다. AI가 전력망이나 금융망 같은 기반 시설에 붙으면서 사고의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공백은 다음 회담에서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부분입니다.
한국이 이미 그은 선
한국 정부는 이 구도에서 이미 자기 자리를 정해둔 상태입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AI 속도조절론에 대해 “이미 앞선 나라의 감속과 추격자의 감속은 다른 문제”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AI에 필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 아니라 속도 책임이라는 발언이었죠. 속도는 경쟁력이고 안전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원칙 아래, AI기본법을 토대로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과 보안 특화 모델, 프런티어 AI 모델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밝혔습니다.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은 배경에는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내놓은 답은 조금 다릅니다. 당장 개발을 늦추는 대신 안전과 신뢰 기반을 갖춘 상태로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거든요. 어느 한쪽 진영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체 모델과 자체 기준을 먼저 세우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실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22일 네이버클라우드 컨소시엄이 주관하는 사이버보안 특화 AI 모델 개발 사업에 착수했고, 10개월 안에 미국과 중국의 프런티어 AI 모델과 겨룰 수준의 보안 AI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미중이 규범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사이, 한국은 자체 모델과 안전 기준을 동시에 쌓는 쪽을 택한 겁니다.
반도체 투자심리에는 단기 호재
시장의 시선은 조금 다릅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회담이 AI 경쟁 지속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면 AI 발전 감속론이 정책으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이는 반도체를 포함한 AI 인프라 전반의 투자심리를 개선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규제보다 개발에 무게가 실리면 인프라 수요가 유지된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회담 뒤에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첨단반도체 수출통제가 안보 장벽으로 계속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번 회담은 한국에 단기적인 기회와 중장기적인 변수를 동시에 안겨준 사건으로 읽혀요. 지금은 미중이 각자 개발 속도를 유지하는 구도라 반도체와 AI 인프라 수요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우선 이득이거든요. 다만 규범의 공백이 길어지면 어느 진영의 기준을 따를지, 아니면 독자 목소리를 낼지 선택을 요구받는 자리가 올 수 있습니다. 한국이 속도와 규범을 함께 챙기는 전략을 실제 성과로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10개월 일정으로 예고한 보안 특화 AI가 약속한 시점에 모습을 드러내는지가 다음 확인 지점입니다.
- 원문: 연합뉴스 — [AI프리즘] 미중 AI ‘평행선’…한국 독자 AI 시험대
- 작성: sw4u 9시뉴스 안나영 / 2026-09-25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