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퓨리오사AI, 상장 시계 멈췄다

지난 4월, 서울 강남의 한 투자자 간담회.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는 “8월 중 거래소 예비심사 청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고, 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도 “연내 코스닥 상장이 무난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로부터 석 달. 두 회사의 IPO 시계가 일제히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신문이 2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를 비롯한 국내 AI 반도체 유니콘들이 당초 계획했던 상장 일정을 사실상 ‘속도 조절’ 모드로 전환했어요. 표면적인 이유는 ‘시장 상황’이지만, 속내는 좀 더 복잡합니다.

우선 숫자부터 보면요. 리벨리온은 지난해 매출 320억 원을 달성하며 K-AI 반도체 스타트업 중 처음으로 ‘흑자 전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퓨리오사AI는 같은 기간 회계법인으로부터 ‘존속 능력 불확실’ 의견을 받았어요. 몸값은 리벨리온이 약 3조 4천억 원, 퓨리오사AI가 약 2조 원대로 평가되는데, 두 회사 모두 ‘이 몸값을 공모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 앞에 멈춰 선 거죠.

여기에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판도 변화도 변수입니다. 엔비디아가 올해 하반기 Blackwell Ultra를 출시하면 데이터센터용 GPU 시장의 독점 구도가 더 공고해질 전망이고, 국내 NPU 스타트업들의 설 자리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업계 관계자는 “지금 상장해도 작년 파두 사태 이후 한층 깐깐해진 상장 심사에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꼭 나쁜 신호만은 아니에요. 리벨리온은 올해 초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KT 등과의 협업을 통해 중동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고, 퓨리오사AI도 아랍에미리트의 국부펀드 무바달라로부터 투자의향서(LOI)를 받았거든요. 증시 상장을 잠시 미루더라도, 글로벌 레퍼런스를 더 쌓고 몸값을 끌어올릴 시간을 버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어요.

정부의 ‘국민성장펀드’도 변수예요. 정부가 조성 중인 150조 원 규모 펀드 중 약 1조 원이 K-NPU 생태계에 배정될 예정인데, 이 자금이 실제로 집행되면 상장 전 프리IPO 단계에서 기업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어요. “상장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조건에서 하기 위해 숨 고르는 중”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만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건 아니에요. 미국의 그로크(Groq), 중국의 비렌테크(Biren) 같은 해외 NPU 스타트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레퍼런스를 빠르게 쌓고 있고, 국내 대기업들도 자체 AI 칩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어요. 상장 시계를 늦춘 사이 경쟁자들이 시장을 선점해버리면, 돌아왔을 땐 더 좁아진 자리만 남을 수도 있거든요.

이번 ‘속도 조절’은 단순한 IPO 일정 변경이 아니라, 한국 AI 반도체 생태계가 ‘기술력’에서 ‘상업성’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읽혀요. 기술로는 세계 무대에 섰지만, 시장에서 제값을 받으려면 아직 몇 개의 관문이 더 남았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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