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광주사업장, 37년 만에 반도체로 갈아입어요

1989년 삼성전자가 광주에 사업장을 세웠을 때, 그곳은 가전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37년이 지난 지금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일이 시작됐어요. 21일 전남광주 북구 오룡동 첨단과학국가산업단지 안 광주사업장에서 반도체용 냉난방공조(HVAC) 생산라인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삼성전자가 호남에 반도체 관련 시설을 짓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제3 캠퍼스 전경

가전 공장에서 반도체 팹의 뒷방으로

반도체 팹은 클린룸 안 온도와 습도를 아주 좁은 범위에서 정밀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수천 대 장비가 열을 뿜어내는데, 이 열을 제때 걷어내지 못하면 수율이 흔들리거든요. 그래서 팹에는 냉각 공조 설비가 필수로 붙습니다. 광주에 짓는 HVAC 라인은 삼성이 광주 군공항 부지에 세울 예정인 신규 반도체 팹과 연결되는 시설이에요.

돈도 규모가 다릅니다. 이번 투자액은 2,400억원으로, 건축에 1,900억원, 생산설비에 500억원이 들어갑니다. 오는 2028년 상반기 가동이 목표이고 약 300명의 신규 고용이 계획돼 있습니다. 1989년 사업장 설립 이후 삼성전자가 광주에 넣은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입니다.

425조원 계획의 첫 삽

숫자를 조금 더 넓혀 보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삼성은 지난 6월 호남에 총 42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가운데 약 400조원을 광주에 신규 반도체 팹 2기를 짓는 데 쓰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SK하이닉스의 팹 2기 건설 계획까지 더하면 두 회사의 호남 투자 규모는 800조원 수준으로 불어납니다. 이번 2,400억원짜리 착공은 그 큰 그림의 첫 삽인 셈이죠.

후공정 쪽에도 속도가 붙었습니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는 광주공장에 1조원을 투자해 유휴부지에 생산시설 6개 동을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증설할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이 투자의 발목을 잡던 폐수처리 문제를 전남광주시와 장성군이 함께 풀면서 일정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입니다. 장비·부품 기업이 붙을 공간이 마련된다는 뜻이라, 지역 클러스터 입장에서는 착공식보다 반가운 소식일 수 있어요.

사람과 전기가 함께 따라와야

설비 라인 하나에도 조건이 붙습니다. 2,400억원 투자와 300명 신규 고용이 계획에 들어 있고, 2028년 상반기 가동이라는 시점도 정해졌어요. 팹은 전기를 산업용으로 대량으로 쓰는 시설이라 변전 설비와 용수 공급이 함께 준비돼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광주사업장에 냉각 공조 라인을 먼저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팹을 지은 뒤에 설비를 맞추면 그만큼 가동이 늦어지니까요.

지역 단위 유치 경쟁도 뜨겁습니다. 익산시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 지정을 발판으로 기업 유치에 나섰고, 전남광주는 후공정과 설비 라인을 함께 끌어오는 전략을 쓰고 있어요. 같은 날 전남 동부권에서는 민간 기업끼리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를 공동 개발하는 협약도 나왔습니다.

지역으로 번지는 반도체 투자 경쟁

업계에선 이번 착공을 두고 “팹이 들어서기 전에 그 팹을 돌릴 설비부터 지역에 붙인다”는 점을 짚습니다. 통상 팹 투자는 수도권과 기존 거점에 몰리기 마련인데, 공조·전력 같은 인프라 설비까지 지역에 배치하면 공급망이 분산되고 납기 대응도 빨라지거든요. 정치권에서도 호남 반도체 공동협의체 얘기가 오가는 등, 투자 유치 경쟁이 지역 단위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이번 변화를 어떻게 읽을까

삼성의 호남 투자가 설비 라인 하나로 시작됐다는 사실은, 대규모 팹 계획이 발표로 끝나지 않고 실제 공정 단위로 내려오고 있다는 신호로 읽혀요. 팹 건설은 땅과 전기와 물, 인력이 모두 맞아야 진행되거든요. 그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 일정이 밀리는데, 냉각 공조 라인을 먼저 착공했다는 건 그 준비 작업이 이미 상당히 구체화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볼 지점은 세 가지예요. 2028년 상반기 가동 목표가 지켜지는지, 군공항 부지 팹 착공 일정이 언제 확정되는지, 앰코의 증설이 계획대로 6개 동까지 이어지는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맞아떨어지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발표가 아니라 생산 능력으로 말하는 단계에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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