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AI 연구윤리 가이드, 논문 저자 자격 없어요

국가 연구개발(R&D) 과제에서 인공지능(AI)을 어디까지 쓰게 할 것인가. 정부가 그 경계를 문서로 못 박았습니다. 연구 현장에서 AI 활용이 일상이 된 지 오래인데, 기준은 앞서 나온 게 아니라 한참 뒤늦게 따라붙은 셈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뀐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가연구개발 AI 연구윤리 가이드

심의·의결까지 거친 문서에 담긴 것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국가연구개발 AI 연구윤리 가이드’가 확정됐다고 20일 밝혔습니다. 골격은 단순합니다. AI는 문헌 조사처럼 보조적 도구 역할에 머문다는 것, 법적·도덕적 의무를 질 수 없는 만큼 논문 저자나 특허 발명자로서 지위와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 소재도 분명히 했습니다. 연구자는 AI의 한계를 인식하고 책임 있게 활용해야 하며, 기관은 윤리적 AI 활용을 위한 제도적 지원체계와 윤리적 위험 예방·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에 사실관계 검증, 주체적 판단, 투명성 확보, 결과 신뢰성 관리, 정책·규정 준수, 보안 확보, 개인정보 보호 등 7대 권고사항이 붙었어요.

눈에 띄는 건 심사 쪽 조항입니다. 국가 R&D 과제 평가나 논문 심사에서 평가자가 대상 자료를 외부 AI에 입력하지 못하도록 권고했습니다. AI로 심사 기준을 우회하거나 숨겨진 프롬프트로 평가를 왜곡하는 행위도 금지 대상입니다.

왜 지금인가, 두 가지 압력

첫 번째 압력은 현장의 속도입니다. 초안 작성과 문헌 정리, 데이터 해석까지 AI가 들어오지 않은 단계를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두 번째는 신뢰 문제입니다. 생성형 AI는 없는 사건번호와 판례를 그럴듯하게 섞어 내놓습니다. 그 결과물이 논문이나 특허, 과제 보고서에 남으면 연구 진실성 전체가 흔들립니다.

정부는 이 문서에 구속력이 없고, 어길 경우 제재하지도 않겠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연구노트에 “이 부분은 AI가 정리했다”고 표시를 남기는 일에 가깝습니다. 다만 표시를 남겼다고 판단까지 넘길 수는 없다는 게 이번 가이드의 요지죠.

홍순정 과기정통부 성과평가정책국장은 “AI는 연구의 효율성을 혁신적으로 높일 수 있는 유용한 도구지만 그에 대한 최종 책임은 언제나 연구자에게 있다”며 “이번 가이드가 연구현장에 책임 있는 AI 활용 문화를 정착시키고 국가연구개발의 연구 진실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어디를 걱정할까

현장의 우려도 함께 나왔습니다. 이민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보안이 필요한 연구에서 상용 프론티어 모델을 막고 기관 폐쇄망 도구로 대체하는 방향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면서도, 실제 운용 가능한 폐쇄망 모델과 최신 상용 모델의 성능 격차가 커 연구 품질 저하가 우려되고 오히려 연구자들이 우회로를 찾게 되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정빈 부산대 교수는 “연구자는 연구개발기관이 허가한 보안 환경 내의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의 적용 범위와 제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연구 도구 전반에 대한 포괄적 사전허가제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봤습니다. 개인정보와 기밀자료는 민감도에 비례해 보호하되, 새 도구를 실험하는 연구의 자율성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가진단표와 활용 공개 서식이 또 하나의 행정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제재는 없지만 서식은 남습니다

이게 우리한테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구속력 없는 선언이라도 자가진단표와 활용 공개 서식이 과제 신청·평가 과정에 붙는 순간 사실상의 업계 표준이 됩니다. 국가 R&D 예산을 받아 일하는 연구자와 기관 입장에서는 문서 한 장이 평가 항목이 되는 셈이죠.

이번 가이드는 AI 활용을 막는 규제라기보다, AI가 만든 문장에 책임의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으로 읽혀요. 국정원이 오는 12월 각급 기관용 AI 레드티밍 지침과 보안 플레이북을 배포할 계획이고,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도 “대한민국의 AI 시계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속도를 택하되 검증 체계를 같이 세우는 방향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다음 확인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자체 지침을 언제 정비해 맞추는지, 그리고 내년 국가 R&D 과제 평가 서식에 자가진단 항목이 실제로 반영되는지예요. 연구 현장의 반발과 행정 부담이 어느 선에서 정리되는지가 이 가이드가 살아 있는 규칙이 될지, 참고 문건으로 남을지를 가를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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