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발 로봇이 한 번 충전으로 42.195km를 걸어 완주한 기록이 국제학술지까지 오른 이유는 숫자 자체보다 그 뒤에 있습니다. 배터리라는 물리적 한계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느냐가 로봇 산업의 다음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KAIST 연구진이 만든 사족보행 로봇의 마라톤 완주 결과가 네이처에 실린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내 로봇 연구로는 첫 사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로봇 및 인공지능연구실 황보제민 교수팀은 24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서 기계 구조와 전기회로, 보행 제어 등 로봇 전체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종합 분석해 에너지 효율을 크게 끌어올린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2′(RAIBO2)를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로봇 연구가 네이처에 게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성적은 구체적입니다. 라이보2는 2024년 11월 경북 상주 곶감 마라톤 대회에서 배터리 재충전이나 교체 없이 풀코스 42.195km를 4시간 19분 52초에 완주했습니다. 보행 로봇이 실제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완주한 세계 최초 기록이고, 지금까지도 유일한 기록입니다. 당시 사용한 에너지는 약 1,280Wh로, 최대 65km까지 주행할 수 있었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입니다. 완주 후에도 배터리가 상당 부분 남았다는 점이 함께 주목받았습니다.
황보 교수는 “같은 용량의 배터리로 미국·중국 대표 로봇개들의 3배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성능”이라며 “로봇으로서 700만 년 진화의 결과물인 인류의 보행 에너지 효율을 처음으로 뛰어넘은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기계와 전기, 제어를 통째로 다시 짰다
기존 사족보행 로봇은 1회 충전당 주행거리가 20여 km에 그쳤습니다. 재난 지역이나 산악 구조 현장에서 쓰려면 배터리 사용 시간이 발목을 잡아 온 셈이죠. 원인은 다리 관절을 움직일 때 생기는 기계적·전기적 손실, 발이 지면에 닿을 때의 충돌 손실, 미끄러짐 등이 겹친 구조적 특성에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개별 부품을 손보는 대신 로봇 전체에서 새는 에너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기구와 전장, 구동 및 제어 시스템을 한 번에 설계했습니다. 기존 연구가 기계설계나 보행 자세, 강화학습을 이용한 보행 방식 같은 개별 요소 개선에 집중했다면, 라이보2는 장시간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설계 원리를 통합적으로 제시한 사례입니다.
비교 대상도 분명합니다. 같은 용량 기준으로 미국 고스트로보틱스의 비전60, 중국 유니트리 B2와 딥로보틱스 같은 글로벌 경쟁 기종보다 3배 이상 멀리 이동합니다. 미국 대통령 경호에도 투입되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도 공식 사양 기준 최고 속도 시속 5.7km, 평균 배터리 운용 시간이 90분 수준입니다.
이번에 쓰인 배터리는 삼성SDI 제품입니다. 로봇 하드웨어는 연구팀이 직접 설계하고 수작업으로 제작했으며, 제작은 황보 교수가 세운 KAIST 교원창업기업 라이온로보틱스가 맡았습니다.
남은 건 현장 투입입니다
이번 성과는 배터리 용량을 키우는 대신 쓰는 에너지를 줄이는 쪽에서 답을 찾았다는 신호로 읽혀요. 국내 로봇 산업이 부품 조달과 원가 경쟁보다 시스템 설계 역량으로 승부할 여지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족보행 로봇은 험한 지형에 강해 재난 구조와 산악 순찰, 물류 현장에서 수요가 먼저 열리는 분야이고, 그 문턱을 배터리가 막고 있었으니까요.
황보 교수는 연구 성과를 산업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같은 효율이 먼지와 진동이 심한 실제 현장에서도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가 다음 검증 지점입니다. 국내 로봇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가 배터리 교체 주기를 늘려 운용 인력 부담을 줄이는 데 직접 연결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국내 피지컬 AI 생태계가 학술 성과를 제품 경쟁력으로 바꿔낼 수 있는지, 그 첫 시험대가 여기서 시작되는 셈이네요.
- 원문: 연합뉴스 — KAIST 네발 로봇 ‘라이보2’, 마라톤 완주…배터리는 34% 남았다
- 보조 출처: ZDNet Korea — 배터리 교체없이 마라톤 완주 ‘라이온2’, 네이처 실려
- 작성: sw4u 9시뉴스 안나영 / 2026-09-24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