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애크먼의 “자살적 공감”, 무슨 말이에요?

5월 19일 오후, 타임 매거진 웹사이트에 한 줄짜리 헤드라인이 떴어요. “What is Suicidal Empathy, a New Philosophy Promoted by Elon Musk and Bill Ackman?” 읽자마자 드는 생각: 둘이 또 무슨 단어를 만들어냈냐.

“Suicidal Empathy(자살적 공감).” 직역하면 끔찍하게 들리죠. 하지만 이게 머스크와 헤지펀드 거물 빌 애크먼이 지난 몇 주 동안 X에서 밀고 있는 진짜 개념이에요.

무슨 뜻이냐면요. 너무 많은 공감이 오히려 사회를 망가뜨린다는 주장이에요. 범죄자를 이해하려다 처벌을 못 하고, 실패한 정책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공감’ 때문이라는 논리예요. 타임은 이 개념의 기원을 2019년 심리학자 폴 블룸(Paul Bloom)의 저서 Against Empathy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머스크와 애크먼은 이걸 정치·기술·경제 영역으로 확장했어요.

“Suicidal empathy is destroying civilization.” — Elon Musk on X (2026.05)

애크먼도 비슷한 톤이에요. 그는 최근 X 스레드에서 “우리는 감정적 공감과 이성적 판단을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며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정책, 국경 정책, 기업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까지 ‘자살적 공감’ 프레임으로 묶어 비판했어요.

재밌는 건 타이밍이에요.

머스크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밀기 시작한 건 OpenAI 재판이 절정으로 치닫던 5월 중순. 그리고 검찰이 그를 상대로 한 ‘사기·배임’ 프레임을 공감을 무기로 삼은 공격이라고 재해석하면서, 대항 담론으로 ‘자살적 공감’을 꺼내든 거예요. 타임은 이걸 두고 “머스크가 자신의 법적·사업적 싸움을 철학적 전쟁으로 프레이밍하고 있다”고 분석했어요.

비판도 만만치 않아요. UC 버클리의 한 윤리학 교수는 “공감을 병리화하는 건, 연대의 정치적 기반 자체를 허물 수 있다”고 경고했고, 《애틀랜틱》은 “실리콘밸리의 새 허무주의”라고 칭했어요. 심지어 X 내부에서도 “공감 없는 AI를 만드는 사람이 공감을 비판한다”는 조롱이 돌았어요.

하지만 이걸 단순히 머스크의 변명쯤으로 치부하기엔, 실제로 정치권에서 이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움직임이 보여요. 애크먼의 팔로워는 160만 명, 머스크는 2억 이상. 이 둘이 수 주 동안 반복적으로 던진 개념 하나는 — 최소한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 이미 밈(meme)을 넘어선 담론이 됐어요.

“Suicidal Empathy.” 실리콘밸리가 또 하나의 단어를 정치 무대에 던졌어요. 이게 유행어로 끝날지, 진짜 정책을 바꿀지 — 아마 올해 중간선거에서 답이 나올 거예요.